본문 바로가기
Music/현대 음악 클래식전

현대 음악 클래식전 : PEEJAY - 나비야 X ZION.T

by JKROH 2023. 2. 20.
반응형
 
나비야 X ZION.T
아티스트
PEEJAY
앨범
WALKIN' Vol.2
발매일
1970.01.01
사실 난 궁금하지도 않지 내가 원하던 게 이거니.
나는 잠시 눕고 싶어져 안 들리던 게 들려.
그리고 큰 눈과 마주쳤지, 안경을 벗어야겠어.
비정기적으로 발행될 예정인 현대 음악 클래식전은 제가 5년 이상 들었거나 5년 이상 들을 것 같은 곡들을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곡 선정은 당연히 제 맘입니다. 왜 이따위 노래를 선정했냐고 물으신다면 딱히 사과의 뜻은 전하지 않습니다.
저는 전문 평론가가 아닙니다. 곡에 대한 감상은 굉장히 초보적입니다. 그럼 왜 쓰냐고 물으신다면 제 맘입니다.

모쪼록 여러분에게 좋은 음악을 전달해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운드가 풍성하고 완성도 있는 곡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뭐랄까, 음악을 들으려면 큰 소리로 들으면 더 좋고, 음질이 좋으면 더 좋은데, 사운드가 미니멀하면 듣는 맛이 좀 덜하달까.(그렇다고 미니멀한 곡들을 싫어한다는 건 아니다, 미니멀하면서도 완성도 있는 곡들은 당연히 좋아한다. 다만, 애매한 맛이 나는 곡들을 안듣는다는 말이다.)

 

 피제이의 음악은 내 욕구를 참 잘 채워준다. 그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다양한 곡들부터 두 장의 정규에 이르기까지, 피제이가 프로듀싱한 곡들을 듣고 실망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프론트 아티스트가 실망시킨 적은 종종 있다). 사실 피제이라는 사람을 인식하게 된 것은 그의 첫 정규 앨범인 'WALKIN' Vol.1' 부터인데, 당시까지만해도 음악을 정말 열심히 찾아듣던 터라 이런 좋은 프로듀서를 정규앨범이 나오고나서야 알았다는 사실이 참 부끄러웠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여러 트랙들을 만든 사람이라는 사실에 '내가 음악을 얕게 대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피제이의 음악을 나는 정말 좋아한다. 그의 음악은 화려하면서도 절제되어있고, 세련되면서도 클래식하다.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야 하는 부분에선 마음껏 드러내고, 플레이어가 전면에 드러나야 할 때는 자신을 잠깐 숨긴다. 유행하는 악기를 사용하고 시대의 흐름에 맞는 음악을 만들지만, 동시에 그의 음악은 포멀하면서 시대를 안탄다. 다시 말해, 음악을 기가 막히게 뽑는다는 말이다.

 

 그런 피제이와 정말 잘 어울리는 아티스트가 둘 있다. 바로 빈지노와 자이언티다. 빈지노는 뭐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피제이와의 작업에 대한 즐거움 등을 표출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사에서도 피제이를 언급하고 있고, 둘이 함께 한 작업물은 모두 좋은 퀄리티를 보인다. 특히 빈지노의 정규 1집 '12'는 거의 모든 곡의 프로듀싱을 피제이가 맡았고, 앨범의 퀄리티는 말 할 필요 없이 너무나 뛰어나다.

 

 그렇다면 자이언티는 어떨까. 피제이와 자이언티의 조합 역시 훌륭하다. 자이언티의 첫 정규 앨범 'Red Light'의 수록곡 'She'부터 시작된 둘의 케미는 피제이의 정규 2집에서 절정을 찍었다. 도입부부터 조금씩 달궈지던 곡은 자이언티의 목소리가 나오자마자 마치 처음부터 자이언티가 노래를 하던 것처럼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자이언티의 목소리는 그루비함이라는 단어의 동의어처럼 곡을 이끌고 피제이의 비트는 그 목소리를 완벽하게 받아준다. 나비야는 그런 곡이다.

 

 우리가 팝송을 들을 때, 가사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데 그냥 좋은 노래라서 좋아하게 되는 곡들이 있다. 아니 영어 회화만 해도 어려운데 노래를 알아들으라니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잖아, 그래도 노래는 좋아. 이런 느낌이다. 곡의 완성도가 높으면, 가사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시를 읽거나 문학 작품을 읽는 것도 아니고, '음악을 듣는' 건데, 가사가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문제는 국내 노래를 들을 때는 그게 잘 안된다는 점이다. 이유는 딱 하나다. '듣기 싫어도 가사가 내 귀에 들어오니까.' 그런데 나비야는 그런 곡이 아니다. 가사는 그냥 들어오지도 않는다. 아니, 가사와는 상관없이 그냥 노래가 너무 좋다. 피제이는 이런 완성도를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나비야의 가사의 수준이 낮냐? 그건 또 아니다.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자이언티는 담배연기 자욱한 클럽에서 낯선 이성과의 만남을 아찔한 비유로 표현하고 있다. 내 이상형을 찾기 위해 온 골목골목의 클럽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그 사람을 마주쳤을 때. 불빛 속에 잠깐 마주쳤던 그 시선을 다시 찾을 때. 그리고 북적대는 사람과 시끄러운 음악으로 가득한 클럽에서 단 둘만 있는 것 같은 그 때. 그 순간들을 자이언티만의 표현으로 담아낸 가사는, 자칫 노골적이고 외설적일 수도 있는 장면을 거부감 없이, 되려 아름답고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내고 있다.

 

 이 곡이 처음 나왔을 때, 친한 형과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나도 피제이 비트 받으면 이만큼 곡 만들 수 있겠다.', '그런데 저희는 자이언티가 아닌데요?', '그치? 아무래도 어렵겠다.' 딱 지금도 이 곡을 들을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완벽한 프로듀서랑 같이 하면 내가 그냥 오물같은 벌스를 던져도 그게 예술 작품이 되겠는데' 싶다가도 '아 그런데 자이언티만큼 완벽하게 해석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절정의 실력을 가진 두 아티스트가 보여주는 절정의 케미. 나비야는 그런 곡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