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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mming/Daily

<7/29> 선생님 늘 감사합니다.

by JKROH 2023.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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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선생님은 두 명인데, 한 명은 아리 애스터 감독이고 한 명은 내 친구다. 둘을 선생님이라고 칭한 이유는 각각 다른데, 먼저 아리 애스터의 경우는 늘 신선하고 창의적인 영화로 내 시각과 사고를 한 차원 더 높여준다. 친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진짜 내 선생님처럼 늘 많은 가르침을 주기 때문인데, 오늘 글을 작성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 친구와 아리 애스터의 신작 '보이즈어프레이드'를 보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취업 및 개발과 관련하여 친구에게 아주 많은 가르침을 받아서다. 개발 얘기가 들어가다 보니 이 글을 어느 카테고리에 작성해야하나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는데, 그냥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자 하는 느낌으로 데일리에 작성한다.

 

 아리 애스터의 영화가 불친절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보이즈어프레이드는 가히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영화를 볼 때도, 다 보고 난 후에도 이게 도대체 무슨 영화일까를 파악하지 못했다. 3시간의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영화였는데, 영화를 보고 토론을 3시간 넘게 했다. 뭐 그렇다고 영화가 좋지 않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런 영화를 너무 좋아한다. 영상 매체가 지닌 최악의 단점은 매체를 즐기는 이들이 장면을 상상할 수가 없다는 건데, 아리 애스터의 영화는 영화를 보면서도 끊임없이 상상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난 뒤에도, 도대체 이 영화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감독의 생각은 무엇인지, 어떤 건 의미 있는 오브제이고 어떤 건 맥거핀으로 사용했는지, 특정 장면이 내포한 의미는 무엇인지 따위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만든다.

 

 물론 위의 이유만으로 아리 애스터의 영화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아리 애스터의 영화는 영화 자체만으로 재미있다. 3시간의 러닝타임이 끝날 때까지, 거의 모든 순간을 충실히 영화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뒷자리 아저씨가 3시간 내내 문자음을 켜놔서 중간중간 어쩔 수 없이 몰입이 깨졌다.) 극을 이끌어가는 호아킨 피닉스의 걸출한 감정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아리 애스터 특유의 '관객의 생각을 가지고 노는 방법'을 정말 여과없이 사용했다. 사실 이 사람 손에 놀아나는 건 당연한건데, 오늘 정말 짜증나면서 감탄스러웠던 건 '그럼에도 생각은 내가 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 생각도 전부 틀려먹었었다는거다.

 

 뭐 장황하게 영화의 내용을 적거나 하지는 않겠다. 혹시 영화를 보실 분들이 있으실지 모르니까.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아리 애스터 감독의 지난 작이었던 '유전' 과 '미드소마'는 친절함 그 자체인 영화였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이번 '보이즈어프레이드'의 핵심은 '스토리에 집중하지 말고, 호아킨 피닉스와 주변 인물들이 연기하는 감정 그 자체에 집중해야한다.'이다. 뭐 그냥 그렇다고. 아래는 상세한 내 느낀점인데, 스포일러가 한가득일 예정이니 혹시 영화를 볼 예정이라면 클릭하지 않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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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영화의 핵심인 '어머니와 보의 관계에서 오는 보의 두려움'을 호아킨 피닉스는 정말 말도 안되게 잘 표현했다. 포스터의 네 명의 보는 결국 어린 시절의 보 한명으로 이어진다. 보는 어린 시절의 보에서 단 한치도 성장하지 못했다. 

 이번 영화의 플랫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닮아있다고 생각된다. 보가 자신의 주치의라고 생각했던 어머니의 스파이로부터 받은 약을 먹으면서부터 시작되는 영화는 마치 앨리스가 말하는 토끼를 발견하고 토끼를 따라가면서부터 시작된 것과 유사하게 느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판타지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배경을 현실적으로 만들어서 관객에게는 '이 이야기 중 어느 부분이 보의 망상이고 어느 부분이 실제일까?' 를 물어보는 것처럼 만든다. 위에서 말한 나는 결국 아리 애스터의 손에서 놀아났다는 게 이런 부분이다. 마지막 다락방에서 '그 괴물'을 마주하는 순간. 앞서 발생한 모든 일은 허구라고 감독은 짜잔 하고 알려준다.

 그래서 더욱 이 영화는 '감정'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보를 잃기 싫어하는 어머니의 뒤틀린 애정, 그런 어머니를 마주하는 것에 대한 보의 두려움, 작품의 시작부터 언급되던 죄책감과 양가감정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다.

 

 아무튼 영화는 재밌게 봤고. 이후에는 카페에서 친구에게 현재 작성하고 있는 이력서와 프로젝트 코드의 리뷰를 부탁했다.

 

 내가 리뷰를 요청한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이력서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면, 나는 내 이력서에 적히는 내용이 단순히 feature의 나열이 되는게 싫었다. 그렇다고 정량적인 수치를 직접 기입하자니,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정량적인 수치를 입력할 만큼의 데이터나 트래픽을 처리할 수 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문제 해결 과정을 최대한 이력서에 적어넣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에는 문제 해결과정이나 도메인 설계 등의 단계에서의 고민을 블로그에 녹여낼 시간이 없었지만, 이력서에나마 작성하려 했다. 친구는 그 부분에 좀 더 집중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친구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기로 했다. 일단은 다시 한 번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과정을 돌아보며,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을 요했던 도메인인 랭킹 파트를 다뤄보기로 했다. 랭킹이라는 도메인이 왜 필요했는지, 어떻게 설계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수정해서 현재에 이르렀는지. 그 결과 어떤 이점이 있었는지를 상세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코드 리뷰는 정말 얻어간게 많았는데, '패키지만 보고도 도메인을 추측할 수 있게 패키징을 해라', '레이어를 나누는 건 좋다. 대신 의미 있게 나눠라', '쪼갤 때는 그 단위가 비슷하게 쪼개라. 몇 개만 툭 튀어나오게 쪼갠 것은 잘못 쪼갠 것이다', '함수 단위에서도 추상화 레벨이 같게 고민해봐라' 가 핵심 키워드였다. 아직 주니어도 되지 못 한 나에게는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생각할거리들이었기에, 더욱 친구가 해주는 조언들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그래서 이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 해당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적용해보지 못 했기에 내 코드에 직접 적용한 사례를 소개하거나 내가 스스로 깊이 고민해본 과정들을 기술할 수는 없어 이 쯤에서 글을 줄이지만, 아무튼 친구에게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그랬다. 두 분의 선생님 덕분에, 문화인으로써의 나와 개발자로써의 나의 시각이 동반 상승할 수 있는 하루였다. 간만에 하루를 실속있게 보낸 것 같아 오늘은 두 발 뻗고 잘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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